식민지 근대화론 비판한 학자 허수열과 개발 없는 개발
이영훈 등을 중심으로 한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학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기존 국사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반론을 고심했지만 쉽지 않았다.
식민지근대화론은 확실히 통계를 중심으로 한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크게 앞섰다.
그러나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가 허수열 교수이다.
허 교수는 경제학부 출신인 만큼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중점으로 사용하는 수량경제학적 방법 면에서 그대로 비판했다.
그리고 그 연구와 비판론의 토대가 된 저서가 개발 없는 개발이다.
이 책은 2005년 출간됐지만 이후에도 이영훈 김낙년 교수 등과 논쟁을 계속했고 새로운 논문도 내놓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보완과 수정을 거쳐 2011년, 2016년에 각각 개정판을 냈다.
사실 책을 작년에 읽었는데 드디어 서평을 써. 책은 연구 학술 서적이어서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밝혀내겠어!
경제학과 출신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아. “나도 책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 정리하느라 애쓴 머리 지저분하고 아파… 다시 읽을 엄두가 안 나 ㅠㅠ 이영훈 교수님의 책도 읽고 싶지만 먹고 사는 게 우선이라 시간이 없네. 읽은 책보다 읽고 싶은 책이 는다.
지난해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가 논란이 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다시 대중에게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는데 이에 반해 식근론 비판의 대표격인 허수열 씨도 언론과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됐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워낙 거대한 담론이기도 해서 경제적인 얘기 말고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실증적인 통계비판 측면에서는 수많은 비판론도 대부분 개발 없는 개발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영훈 이사장의 낙성대경제연구소가 펴낸 책 반일종족주의가 논란을 빚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구역질나는 책이라고 비난하자 저자 6명이 모욕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에 힘입어 반일종족주의는 베스트셀러 news.naver.com
책 줄거리의 개략
책에서 허수열은 일제 강점기에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GDP 등 여러 성장률 지표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성장이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1장은 개발론의 특징과 문제점을 관찰하고 자신의 분석 방법을 설명한다.
먼저 메디슨 추계 등을 들어 일제 강점기 때 성장했다고 하는데 메디슨, 낙성대경제연구소 등에서 연평균 4%의 성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계에서도 비싼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해방 직전에는 구한말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이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래의 식근론자들은 이런 민족별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메디슨 추계로 GDP가 성장하고 공업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해방 후에도 조선은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였다.
전체적인 그래프를 보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사실 다르다.
쿠즈네츠는 인구가 늘고 1인당 생산도 늘어나야 근대적 성장이 이뤄진다고 정의하고 있는데 일제는 19111918년, 19321937년에 그런 현상이 있었다.
제2장은 농업에 대해 기술한다.
우선 허수열 교수는 일제시대 자료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특히 19111918년의 성장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당시 조선총독부 스스로 통계가 부정확하다며 몇 번이나 고쳤다.
식근론자들은 이때 통계가 급속히 성장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시대에 급격한 성장을 보일 이유는 없었다.
◆김낙년 교수도 1910년대 통계가 과대평가됐음을 인정했다.
책 얘기는 아니지만 농업 관련 논쟁에서 중요한 것이 이영훈 허수열의 벽골제 논쟁이다.
이영훈은 벽골제는 방조제에 불과하고 일제 강점기 초기에는 수리시설이 증대됐다고 했다가 결국 벽골제가 저수지임을 증명하는 유물이 발견됐으며 이영훈이 옥구도엽 지도의 연대를 조작하기도 했다.
어쨌든 농업생산이 늘었는데 비옥한 토지의 대부분이 일본인에게 넘어갔고 지주제가 고착화된 점, 인구가 늘었지만 오히려 조선인 1인당 미곡, 밭작물의 수확량은 감소했음을 설명한다.
제3장은 공업 부문이다.
공업 부문도 분명히 성장했다.
특히 일부의 지적과 달리 군수공업 이전부터도 이미 상당한 성장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거의 일본인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확실히 공장수가 늘고 자본투자가 늘었지만 소수의 일본자본이 대부분이었다는 것(1942년 광공업 95%가 일본인 소유), 조선인 공업은 대부분 경공업, 가내수공업에 머물러 매우 영세하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시작되면서 어떻게 공업 대부분이 군수공업 경제에 강제로 집중됐는지를 설명한다.
제4장은 근대 교육과 기술의 발전이다.
조선인과 일본인은 학력 정도, 교육 수준이 매우 차이가 컸다.
확실히 조선도 교육이 늘었지만 일본의 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선인의 폭발적인 수요 때문이라는 것과 그에 비해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는 것이다.
또 기술자가 증가했지만 역시 대부분 일본인을 보조하는 하급 역할에 머무르고 전쟁을 위해 급히 양성하면서 수준이 낮았다는 점, 종전 후 농업부문과 달리 공업부문 실업률이 폭발하고 핵심기술자인 일본인이 떠나자 기술이 너무 부족해 대책을 세워야 했다는 점 등이 있다.
5장은 불평등과 차별이다.
여기서는 아까 농업 부문 얘기가 다시 나온다.
인구는 늘었지만 1인당 소비는 개선되지 않았고 소작농, 지역주민, 거지 등 하층민은 계속 늘어 실질적인 임금 개선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인과 비교할 때 조선인은 임금도 낮고 여러 분야에서 하급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있다.
*여기서 임금문제는 반일종족주의 이후 낙성대연구소 이우영 연구원의 논문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제 때 조선에서 인구와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몇몇 사람들은 그래서 조선인들이 일본 덕분에 더 잘살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전근대 시대에 평균수명이 낮았던 것은 높은 영아사망률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개선이 어느 정도 이뤄져 영아사망률이 낮아지면 인구와 평균수명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식량 생산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빈곤은 해결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아프리카가 더 부유해졌다고는 볼 수 없다.
6장은 연속과 단절-개발의 유산이다.
알다시피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조선경제는 파탄났다는 점, 전후 일본인 자본이 떠나고 남은 것이 없다는 점, 게다가 그나마 남은 공업자산이 모두 북한에 있었고, 625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리셋 수준에서 망가졌다는 점이 있다.
이 부분은 김낙년 교수 등 낙성대 경제연구소에서도 인정했다.
다만 식근론자들은 대신 인적 유산이나 제도의 의미를 강조하지만 허수열 교수는 책에서는 수량화할 수 있는 부분만 다뤘다고 한다.
*먼저 조장옥 교수가 2017년에 낸 논문 거시경제학의 눈으로 본 식민지 근대화론.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인적 유산이나 제도 부분에서는 일본의 조선경제정책이 ‘발전형 유인제도’가 아니었던 점, 즉 군사정권의 개발독재정책은 일본과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허수열 교수
식민지 근대화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물론 이 책이 기본 틀 자체를 만들었지만 그 후에도 세부 통계 논쟁에서는 반박과 재반박 등 논쟁이 계속됐음을 알아두기 바란다.
앞으로도 연구는 계속되겠지? 식민지 근대화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선 내가 무조건 부정하는 게 아니다.
참고할 부분이 없지 않다.
처음 그런 주장이 나왔을 때 반응은 뜨거웠다.
자본주의 맹아론 40% 토지 수탈설 등은 덕분에 지금은 폐기에 가까운 설이 됐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나온 덕분에 허수열 교수를 필두로 반박하기 위해 실증적인 부분을 사용한 분석이 이뤄졌고 학계의 연구 수준도 이전보다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이영훈의 대중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지만 김낙년 허수열 이영훈 등의 이전 논쟁은 생각보다 수준도 높고 건설적이었다.
나는 사실 식근론자가 아니다 수탈론자다 이렇게 분명한 이념을 덮고 싶지는 않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게 맞고 저게 있고 그냥 순수하게 현상 자체를 보려고만 하면 된다.
역사는 선일 뿐 악일 뿐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영훈 교수조차도 처음에는 저서에서 일제시대의 발전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나중에 진정한 의미의 무서운 수탈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허수열 교수도 부분적인 개발 문제에서는 인정하고 기존 학설의 한계도 지적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불렸던 자, 낙성대경제연구소도 의견과 정도에 차이가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조선 후기부터 유교적 근대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지만 토지 수탈설은 말이 안 됐다고 한다.
그러다 제국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한국을 비난하고 군사정권을 찬양하는 이승만TV, 일본어 콘텐츠도 제작하고 일본인들도 열광한다.
저 사람은 낙성대 경제연구소의 이우영 연구원.
그러나 문제는 식민지 근대화론자의 대부분이 말로는 순수한 학문이므로 수혜론이 아니라 해도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식근론의 대부 이영훈은 초창기에는 분명 학문적 업적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비윤리적인 장이 됐다.
자기 전문분야도 아닌 세종대왕 부분을 건드려 문제가 되기도 했고, 온갖 정치적 망언에 이제는 일부러 날조도 했다.
◆서울대 명예교수 사칭, 독립운동가 후손 사칭, 기자 폭행 등의 성격문제는 덤이다.
자신은 기존의 편협한 민족주의와 달리 실증적 연구를 한다는 사람이 오히려 극단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수많은 낙성대 경제연구소 사람들도 순수한 학문이 아닌 정치적 행보를 하는 사람이 많다.
이번 ‘반일종족주의’도 실수도 많고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있다.
80년대에 나온 신용하 40% 수탈론도 예전에 이미 학계에서 끝난 논쟁을 한국인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베 등 일본 우익과 언론도 이영훈과 낙성대경제연구소를 무척 좋아하며 자주 언급한다.
그는 또 저쪽 사람들은 순전히 식민지 시대의 발전을 객관적으로 논하고 있다며 의도적으로 조선왕조는 무너뜨리고 군사정권까지 싸잡아 찬양하자 반일정책을 편 이승만은 왜 이렇게 기뻐하느냐, 이영훈 등이 뉴라이트에서 편향적인 국정교과서도 제작하고 이우연 등이 이를테면 우영훈 등이 직접 가서 비난하는 것이다.
사실 이집트 인도 베트남에서도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도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중국인이 있는데 이를 비는 멸칭으로 정일이라는 단어가 있다.
‘정신적 일본인’이라는 의미로 우리의 일폰, 일파와 같다.
정말 사람생각 여러가지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물론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는 것은 좋다.
그리고 명백히 맹목적 반일이나 민족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건설적인 논의를 못할 것 같고 갈등만 커질 것 같아 걱정이다.
요즘 다시 이영훈 교수가 인기다.
이영훈 교수가 펴낸 저서 반일종족주의를 조국 전민정수석이.blog. naver. com1. 역사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에 이렇게 밀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역사… 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