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상인들의 상을 엎으시고 꾸짖으신 것은 유대인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장로 같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성전에서 제물을 사고 팔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모든 법령은 그들에 의해 해석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와서 권위를 논하는 것입니다..
예수께 물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예수님께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도 ‘그 다음에, 내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말하지 않겠습니다.‘당신이 말했듯이 당신은 어떤 권한으로 이것을합니까?(성전의 돌판을 뒤엎다)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예수님은 나중에 포도원의 비유로 응답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널리 퍼졌을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 대제사장 무리는 세례 요한의 권세에 반응하지 않았는가?, 하늘의 권위라면 ‘왜 따라하지 않니??’내가 말할 것,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하는데 백성들이 염려하여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삼았다.. 선지자는 하늘의 권능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무리가 대답하지 못하는 내적 이유는 그들이 이 문제를 예수님께 항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월절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번제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멀리서 동물을 제물로 가져오면 백성들에게 성전에 와서 제물을 사서라도 바칠 수 있다는 근거를 주었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든 예수님이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형식에 마음이 파묻혀 있었습니다., 그들의 권위는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믿음이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먹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무성한 잎사귀 무화과처럼 그들의 포상금으로 사람들에게 유월절 의식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기 계발된 권위는 항상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거리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들을 누룩이라고 합니다., 그는 심지어 그들의 믿음을 얼버무리는 집단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대제사장 무리가 정한 권세는 어떻게든 율법을 준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이므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자기를 단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권세와 믿음은 생명 없는 수고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려 하여 행위의 잎사귀만 무성하게 합니다., 겉에 아름답게 칠해진 무덤 같은 믿음일 뿐.
여기서 대제사장 무리는 단순히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이것을 피하려고 하지만, 다음 포도원 비유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100% 이해한다. 그들이 정의하는 권력은 포도원 주인의 약탈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치 유대인의 나무인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는 많고 열매는 맺지 못하여 마르는 것과 같으니라., 그들은 포도원 주인의 권세를 노리는 종들인 자기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상세한 대답을 하셨습니다..